류기찬대구취재본부장
삼성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86년도의 16연승 기록이다. 또 85년도에는 전, 후기 포함 7할6리의 승률로 우승. 아직도 그 승률이 깨지지 않고 있고 한국시리즈가 없었던 유일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09년의 삼성은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인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이어 13년 연속 달성 기록에 실패한 이날(지난달 23일) 또 다른 기록의 제물이 됐다. SK가 삼성을 상대로 프로야구 최초로 17연승의 기록을 달성한 것.

이만수에게는 삼성 선수 시절 달성한 16연승과 SK에서 수석코치로서 17연승 기록달성에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만수는 86년도 시즌 당시 김영덕 감독과 재일 동포 출신 김일융(니이우라), 김시진 현 우리 히어로즈 감독, 권영호 현 영남대 감독 등 화려한 투수진과 배터리를 이루었고 함학수, 박승호, 이종두, 배대웅, 김성래, 김용국, 오대석, 정진호, 장효조, 정현발, 이해창, 장태수, 허규옥, 홍승규 등 쟁쟁한 타자들과 호흡을 맞춰 16연승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에는 소속팀인 SK가 삼성을 상대로 승리하며 삼성이 보유하고 있던 16연승에 타이기록을 따내고 23일에는 역시 삼성을 상대로 승리, 23년 만에 17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이만수가 몸담았던 삼성이 기록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당시 16연승의 주인공 가운데 김영덕 감독은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대구상고와 한양대 출신으로 환상의 배터리를 이룬 이만수와 김시진이 SK 수석코치와 우리 히어로즈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 최고의 외야수였던 장태수는 삼성 2군 감독에서 최근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겼으며 유격수와 3루수로 활약했던 류중일과 김용국은 역시 삼성에서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밖에 타격천재 장효조는 삼성에서 스카우트로, 홍승규는 해설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은퇴, 야구계를 떠났다. 이만수는 지난달 23일 밤 대기록 달성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86년 당시 달성한 16연승도 의미가 있지만, 수석코치로서 이룬 17연승이 더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만수는 짧은 소감이지만 두 번의 연승기록 달성에 자신이 포함됐다는 사실과 대기록 달성에 삼성이 제물이 됐다는 점에서 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만수와 삼성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만수와 삼성의 껄끄러움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만수는 1997년 당시 39세로 40세까지 현역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은퇴 후에는 삼성에서 지도자 생활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이만수는 결국 은퇴를 해야 했고 은퇴식도 없이 자비로 미국 코치연수를 떠나게 됐다. 이어 2003시즌이 끝나고 나서는 삼성 측에서는 김응룡 감독을 필두로 새롭게 코치진을 개편하기 위한 계획에 돌입하게 되고 수석코치에 선동렬, 타격코치에 한대화, 그리고 배터리코치에 이만수를 낙점하고 코치직을 제의하게 됐다. 당시 이만수는 시삭스의 불펜코치(정확히는 불펜포수)가 되어 있었는데 삼성의 코치직 제의를 받아들여 시삭스 측에 사표까지 제출했다. 그러나 이만수의 삼성입단은 결국 무효화 돼 삼성과의 반목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시 시삭스로 복귀해 불펜코치를 맡을 수 있었고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국내 프로야구 SK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야구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헐크 이만수. 삼성의 중심 타자였던 이만수는 1984년 한국 프로야구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없는 단 하나의 트리플 크라운·타자로서 3할4푼, 23개의 홈런, 80타점으로 당시 최고 영예의 타자에 등극했고 자신의 프로 통산 1천276안타, 252개 홈런, 861타점, 타율 2할9푼6리로 한국의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당연히 회원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프로야구 첫 안타 첫 홈런 첫 타점을 기록한 것도 이만수다.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 이만수를 우상으로 여겼던 초·중학생들이 이제는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의 나이다. 이들은 비록 이만수가 SK에 적을 두고 있지만, 대구 구장을 찾을 때면 이만수에게 그렇게 애착을 보이는 것도 그에 대한 보이지 않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단연 이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프로야구 초창기의 강타자였고 삼성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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