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형편집국/국장
`웃논에는 차나락 심고 아랫논에는 메나락 심어, 울오래비 장가갈 때 찰떡 치고 메떡 칠 텐데, 네가 다 까먹느냐, 휴여~휴여~`

전주지방에 전래되는 허수아비노래다.

허수아비의 유래에 대한 전설은 각 지방마다 다양하다.

위의 노래처럼 전주지방에서 전해지고 있는 전설이 있다.

계모의 지독한 학대에 못이겨 집을 쫓겨나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불쌍한 `허수`가 있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다니다가 아들이 새를 쫓는 논둑에 쓰러져 굶어 죽었는데, 새들이 죽은 허수의 아버지를 보고는 불쌍하고 끔찍스러워 벼이삭이 영글고 있는 들녘에 날아들지 않았다. 그 이후로부터 사람들이 새를 쫓기 위해 허수아버지의 모습, 즉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웠다는 것이다.

경주지방에서도 허수아비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에 가난한 부녀가 있었다. 그딸의 이름은 `허수`였고 혼자남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효녀였다.

하지만 허수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인데다가 새를 너무 좋아했다. 자신의 딸이 곡식을 얻어오면 그것을 새먹이를 주는데 써버렸다. 어느날 신라병졸들이 세금을 안갚았다며 허수를 끌고 갔다. 딸이 끌려간 사실을 안 아비는 울분을 토하며 새장의 새를 잡기 시작했으며 도망치는 새를 쫓으며 그의 딸 “허수야~허수야~”를 외치며 통곡했다. 사람들은 딸을 이름을 외치며 새를 쫓는 아비의 절규를 보면서 논에 인형을 세우고 이를 `허수아비`라고 했다고 한다.

불과 수십년전만해도 농촌들녘에서 허수아비를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농약이 남발되고 산업화가 고도화되면서 허수아비는 아련한 추억이 돼 왔다.

그러던중 지난 추석을 전후로 해 포항 흥해읍 들녘에 허수아비가 다시 등장했다.

흥해읍지역발전협의회가 포항 최대의 곡창지대인 흥해안뜰을 홍보하고 지역주민들에게 농촌들녘 체험을 위해 마련한 `으뜸 허수아비 선발대회 및 출품작전시회`에서 추억이 된 허수아비들이 재등장한 것이다.

10월말까지 흥해초등학교에서 곡강천간 2km 구간 도로변에 전시되고 있는 허수아비는 곰방대를 물고 있는 높이 4m의 대형 하회탈 허수아비를 비롯해 `장보러 오세요`란 깃발을 들고 있는 부부허수아비, 다문화가정을 표현하고 있는 허수아비 등 1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추석을 전후로 해 고향을 찾았던 귀향객들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던 허수아비의 출현에 반가워 아이들 손을 잡고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잠시나마 옛날을 추억했다.

허수아비란 명칭의 유래가 각 지방에서 전해지고 있는 다양한 내용의 전설이 바탕이 돼 있지만 사전적인 의미는 `새나 짐승으로부터 받는 농작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 막대기와 짚 등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헌 삿갓·모자 등을 씌워서 만든 물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허수아비에 대해 우리는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허공을 향해 칼질을 하고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삿대질을 한다는 등의 주체성을 상실한 꼭두각시란 별칭으로 더 많이 통용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 가을 `허수아비가 다시 등장했다`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있다면, 우리는 정치를 떠올리고, 권모술수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허수아비는 황금들판에 홀로 서서 오직 1년내내의 고난을 이겨낸 결실의 수확을 묵묵히 지켜내는, 자신의 소임을 미련하리만큼 지키고 있는 우리시대의 표상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못된 계모로부터 쫓겨난 자식을 지키지 못한 아비의 절규와, 소박한 행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침탈에 대한 한과 분노가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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