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PLACERS’ 대표 정승권

정승권 대표가 디자인하고 시공한 예천의 파티하우스. /‘PLACERS’ 홈페이지

경상북도 영천시. 말 산업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는 곳. 그리고 항공산업 유치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곳이다. 영천의 중심에는 고층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내를 조금만 벗어난 도로는 교통체증을 모르는 듯 자동차를 보기가 힘들고, 탈탈거리는 경운기를 모는 할아버지가 뒷자리에 할머니를 태우고 느릿하게 움직인다. 오래된 전봇대를 감싼 이름 모를 나무의 뿌리넝쿨처럼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곳. 그곳에 청년 정승권 씨가 산다.

 

영천살이 3년차, 로컬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정승권 씨

‘바퀴달린집2’ 등 직접 디자인… 새로운 주거 트렌드 선도

고객 맞춤형 다양하고 독특한 콘텐츠로 특별한 장소 창조

공간 활용 기획·제작 등… 전국서 건축물 체험방문 잇따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정승권 대표.
자신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정승권 대표.

이곳에 산다는 청년 ‘PLACERS’의 정승권 대표, 그의 명함에 ‘Local Master Planner’이라는 특이한 글귀가 있었다. 직역하면 ‘지방 전문 계획’이다. “제가 하는 일이 일종의 새로운 주거 트렌드를 만드는 겁니다. 방송에서 소개된 ‘바퀴달린 집 2’도 저희가 디자인한 건데요. ‘로컬을 아름답게 디자인한다’는 것이 저희 회사의 모토라고 할 수 있죠.

그의 말대로 정승권 대표의 회사 ‘PLACERS’의 소개들에는 “이색적인 곳에서 색다른 추억을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거칠기 짝이없는 폐공장이 인더스리얼 컨셉의 멋진 카페가 되어지고 자유롭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황량한 공간에 놓여진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노마드 컨셉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또한 행여 평범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곳을 채우는 음악이 우리의 감성을 채우기도 합니다. 공간에서의 경험은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부분에서 고민되어져야 합니다”는 글이 씌어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영천’인 것일까. 일반적인 ‘귀농·귀촌’과는 다른 그의 정착. 서울의 굵직한 건축사회를 다니던 청년은 왜 경북 영천의 시골 마을로 왔을까. 인구도 줄고 있던 집도 폐가가 되어가는 마당에 시골에 새로운 공간을, 그것도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일을 하겠다는 게 말이 될까.

“기회의 땅으로 보였어요. 만들어진 시스템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전해볼 수 있는 곳이죠. 그리고 재미있어요. 도시에서는 사는 것이 ‘살아내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에서는 제가 스스로 ‘살아가는’ 느낌이죠.”

그리고 그의 ‘로컬’에 대한 자랑이 장시간 이어진다. ‘10년 전 황량했던 영천 시외버스터미널의 기억이 아직도 있다’는 기자의 말에 “여전하다. 변한 것이 없어요”라며 웃음을 짓던 정승권 대표.

“보통 우리가 지역 또는 로컬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외진 곳이나 시골이라는 식의 수식어가 붙어요.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이동반경과 행동반경이 객관적인 접근성을 넘어 심리적으로 멀리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2~3시간 가는 것에 대해서도 ‘멀다’라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좋은 곳이 있어서 찾아가는 분들을 보면, 가고자 하는 목적이 워낙 분명하고 심리적인 거리가 대단하게 줄었죠. 저희 건축물을 체험하시는 분들도 수도권 쪽의 분들이 많아요. 고객분들이요? 원하는 바가 분명하게 있다면 많이들 오시죠.”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내내 신경쓰였던 뒤편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던 안산을 비롯한 경기도, 강원도 등의 지명이 고객분들이었다니. 순간 부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일테다.

 

예천 파티하우스 내부 모습. /‘PLACERS’ 홈페이지
예천 파티하우스 내부 모습. /‘PLACERS’ 홈페이지

□ 로컬의 단점요? 외로움이죠... 가족과 함께 이겨내고 있어요

이제 우리나이로 마흔. 하지만 삼심대를 힘주어 말하는 정승권 대표는 82년생 청년이다. 그의 고향은 경남 거창, 하지만 인생의 절반을 서울에서 보냈다. 이제 영천살이 3년차의 청년이다.

“건축회사를 다녔어요. 마지막에는 회사에서 사업기획 팀장을 했죠. 모든 기업이 그렇겠지만, 변화를 해야 하죠. 기존의 방식대로 사업하기가 힘들어요. 사실 팀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공부를 한거죠. 사업을 위한 공부요. 사실 회사 생활 10년차 되는 다음날에 바로 사직서를 냈어요. 입사 때부터 10년을 목표로 하고 일을 했죠. 10년차가 되면 그만두고 사업을 해야겠다라는 것이요.”

그의 말을 종합하면 ‘운’도 좋았다. 사업을 고민하던 중에 경상북도에서 추진하는 청년유입정책이 있었고, 좋은 조건을 찾아 영천으로 오게 됐다. 정승권 대표의 아내가 영천 출신인 것은 덤. 이러한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로컬 생활’의 단점에 대해서 말이다.

“1~2년차 때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힘들다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가족 밖에 없어요. 그게 좀 단점이죠. 제가 생각할 때, 로컬에서 이겨야 하는 1순위가 외로움인 것 같아요. 물론 외롭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사치라고 느낄 정도로 너무 정신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죠. 하지만 저도 사람이니까. 가끔 힘들 때 친구들을 만나서 맥주 한 잔 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다행히 내일 친구들이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하네요.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거죠.(웃음)”

정승권 대표의 가족이라는 말에, 그의 가족에 대해 물었다. 아내와 2살·5살의 아이와 함께 하고 있다는 그는 “사실 막내인 둘째는 영천이 고향”이라고 했다. 정 대표가 영천에 정착한 이듬해에 태어난 셈이다. 그런 그가 힘주어 말한 것이 있다.

“애기들이 어릴 때, 빨리 내려와야 해요. 만약 저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면, 많은 고민을 해야 했을 거에요. 교육이요?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생각에 올인을 하고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저도 서울로 학교를 다녔고, 취업을 해보려고 발버둥을 쳐보고, 패턴에 맞춰서 삶을 살았고 회사도 다녔죠. 스스로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서울로 갈까하고요. 하지만 서울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내 미래를 위한 다른 것을 준비했을 것 같아요. 만약 로컬에 있었다면 가까운 부산이라든지 국립대를 가서 자격증을 따거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삶을 살면서 제 스스로의 역량을 키웠을 것 같아요.”

 

영천살이 3년차. 정승권 대표가 집짓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천살이 3년차. 정승권 대표가 집짓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10년후… 로컬에서 아이들과 함께 꿈을

문득 영천살이 3년차인 그의 사업 규모가 궁금해졌다. 그에게 회사의 매출을 물었다. “1~2년차 때는 거의 없었죠. 지금은 (웃음) 먹고는 살아요. 어느 정도는요. 그리고 지금 직원이 저를 포함해 정규직이 5명이구요. 계약직이 6명. 오픈 그린이라고 하는 곳에 3명. 디자인팀 1명이 근무하고 있죠.”

사실 정승권 대표는 귀촌 3년 만에 성공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를 반증하듯, 정 대표는 도시청년 우수사례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외부에서 영천으로 유입시킨 직원만 3명에 달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또 영천시와 함께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영천시와 플레이서스가 함께 하는 집 짓기 학교’가 그것. 기수별 30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11월에는 5기가 개강한다.

그런 그에게 10년, 20년 후의 모습을 물었다.

“10년 후요? 아유. 꿈이죠. 아직은.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에서 독특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어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한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함께 고객 요구에 맞는 특별한 장소를 창조하고 싶죠. 경북에만 있는 것이 아닌 전라도와 강원도, 제주도 그리고 해외까지도요. 그리고 지금 제조업 공장을 열어 놓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디자인과 제작기술, 수주 경험을 기반으로 그런 것들을 함께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가족에 대한 문제요? 아이들이 학교를 가도 솔직히 영천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아이들이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 필요한 부분이 생기고, 또 아이들이 원하는 부분이 있겠죠. 즉, 기회의 가치를 선택하는 경우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까지는 로컬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함께 로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꿈꾸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죠.”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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