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업도시의 아픔
<하> 일본제철이 떠나는 쿠레市

쿠레제철소 전경. /쿠레제철소 홈페이지 다운

일본제철은 한동안 세계를 주름잡던 철강 기업이었다. 불과 5년전까지 만 해도 일본제철은 구조조정은커녕 몸집 불리기에 집중했다. 2012년에는 스미모토 금속공업을, 2016년에는 일신제강을 합병했고, 한때는 세계 2위 철강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인 증산에 나서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후발주자였던 중국 철강업은 빠르게 기술력을 축적, 대량 생산을 본격화했다. 일본제철은 당장 공급 과잉 해소라는 사태에 직면했다. 이때를 전후해 기술력 측면에서도 한국 철강기업에 밀리기 시작했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귀결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2018년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이자·세금 차감 전 조강 1t 당 이익(EBIT)은 2018년 40달러까지 낮아졌다. 같은 해 포스코가 116달러, 중국 바오산 강철이 107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수모에 가까웠다.

결국 2019년 일본제철은 4천4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1950년 출범 이후 최대 적자였다. 일본제철이 보유한 3대 제철소가 모두 3천억 엔이 넘는 손실을 냈고, 쿠레제철소도 3천966억 엔의 손실을 봤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일본제철은 2020년 2월 대규모 사업구조 재편을 결정했다. 일본제철이 보유 중인 15기 고로 중 4기의 가동을 중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수요가 더욱 쪼그라들자 다음해 일본제철은 고로 1기 추가 폐쇄를 결정했다.

2025년까지 고로 15기를 10개로 축소하고 전체 직원의 20%에 해당하는 1만 명의 인력을 감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제철은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1천500억 엔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천정부지’ 적자로 지난 9월 고로 2기 가동 중단… 2023년까지 ‘전면 폐쇄’ 조치

1962년 첫 화입 이후 도시 부흥 이끈 ‘59년 철강역사’ 무너지며 지역경제 치명타

다각도로 회생안 찾지만 불안한 미래… 한국도 반면교사 삼아 다양한 고민 필요

□ 철강과 조선의 도시 쿠레시, 일순간에 나락으로

쿠레시는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도시다. 지난 9월을 끝으로 쿠레제철소의 고로 2기는 가동을 중단했다. 일본제철은 2023년까지 압연 공정을 비롯한 하공정까지 전면 폐쇄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59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제철소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동안 쿠레제철소는 철강과 조선의 쿠레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나 다름없었다. 1962년 첫 화입을 시작한 이후 일신제강의 주력 제철소로 활약하다 지난 2016년 일본제철이 일신제강을 합병하면서 일본제철 품안에 둥지를 들었다. 1962년 화입 당시 일본 츄코쿠 지역 최초의 고로였던 쿠레제철소 1고로는 쿠레시와 히로시마현, 나아가 츄코쿠 지역의 경제에 그동안 큰 힘을 실어줬고, 중심축을 이뤘다.

쿠레제철소에는 일본제철 직원 1천여 명, 협력회사 2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고로 가동 중단 조치로 절반 이상의 인력이 고용에 타격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음식점, 숙박시설 등에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까지 포함하면 쿠레시의 경제적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쿠레제철소에서 발생한 소비지출을 약 100억 엔으로 추산한 일본 매체들은 “제철소 가동으로 발생한 쿠레시의 시민세와 재산세 소득 또한 연간 약 300억 엔에 육박했다”며 당장 이 문제 해소가 시급한 현안이라고 진단한다. 제철소 폐쇄 이후 일본제철이 쿠레의 토지와 설비까지 처분하면 매년 몇 억 엔에 달하는 고정 자산세 수입도 없어지게 된 점도 시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최근 철강재 수요 회복으로 수급이 타이트한 상황이라 당초 수립했던 고로 휴지 계획에 대한 재검토 요구 등도 있었으나 일본제철은 최적 생산체제 구축을 추진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확실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일각에선 쿠레제철소 폐쇄 결정이 취급 품목, 생산성, 경쟁력 등을 종합하여 고려한 것이라고는 하나 지난 2019년 8월에 발생한 화재사고도 중요한 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중대재해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안전에 대한 부분이 무엇보다 현안이 되고 있는 국내 산업계에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 쿠레시의 철강산업 호황,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아

우리나라 창원시 진해구와 비슷한 도시인 쿠레시의 산업역사는 지역이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쿠레시는 오랫동안 중후장대산업이 주를 이뤘던 도시였다. 조그만 어촌이었던 쿠레시는 메이지유신 이후 1886년 일본 해군이 주둔하며 2차 세계 대전 당시 조선소와 무기 공장이 들어서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후 조선과 철강업의 성장과 함께 산업도시로 발전했다. 실제로 2018년 기준 쿠레시의 총 생산액은 1조1천395억 엔. 이 중 제조업의 비중이 43%로 히로시마현 평균인 27%보다 높았고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 영화의 순간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로 폐쇄 조치로 지역 자체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설상가상, 일본제철에 이어 지역 대표 조선소인 칸다 조선소의 쿠레시 철수설도 나오고 있어 지역에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쿠레시의 신하라 요시아케 쿠레 시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쿠레시는 중후장대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자부심 속에 시대 흐름에 둔감했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금까지는 지역이 대기업의 하청에 익숙해져 있었던 구조라 쿠레제철소 폐쇄로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현재 관건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후장대 산업의 쇠퇴가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지역사회나 행정기관의 민감도도 낮았기에 이에 대한 대책을 손 놓고 있었을 뿐”이라며 “20~30년 전부터 산업의 구조 전환에 대해 고려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2023년까지 압연 공정을 비롯한 하공정까지 전면 폐쇄하는 쿠레제철소 전경.    /쿠레제철소 홈페이지 다운
2023년까지 압연 공정을 비롯한 하공정까지 전면 폐쇄하는 쿠레제철소 전경. /쿠레제철소 홈페이지 다운

□ 탄소중립시대, 지속가능한 도시 유지 해법 찾아야 할 때

소셜미디어에 ‘쿠레시’를 검색하면 용광로가 멈춘 쿠레시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굴뚝은 있으나 연기는 없는 고요한 풍경이다. 그 장면을 보면 그 도시가 안고 있는 분위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산업의 축을 잃어버린 쿠레시 지방정부는 제철소 부지를 도시재생사업으로 가닥 잡는 한편 항구도시의 이점을 살려 수소 수입거점 지역으로의 성장 계획 등을 수립 중이다. 또 신산업 육성을 비롯 관광루트 개발과 함께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 지속 가능한 도시 유지를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고는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들 한다. 더욱이 이미 젊은 층이 다른 지역 취직 등으로 속속 떠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 22여만 명인 수준인 인구도 조만간 2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제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역사회를 지탱해 오고, 지역사회는 그들을 키워왔던 쿠레시에서의 역사는 이제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한국 산업도시의 현실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 한국 지방 도시들은 단일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저출산 및 지방 기피 현상으로 인구 절벽의 위기에 놓인 지방 도시에게 거점 산업의 몰락은 위기 그 자체다.

글로벌 경제권에서 산업 구조 변화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여건에 맞는 ‘지속 가능한 산업 단지’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기존 거점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고부가가치화를 꾀하는 한편, 거점 산업 중심으로 형성된 탄탄한 인프라를 활용해 신성장 동력을 찾는 투 트랙 전략 등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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