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낙률시인·국악인
오낙률 시인·국악인

여름 장마가 끝났다는데 하늘은 며칠째 잔뜩 흐린 모습을 하고 칠월을 마무리했다. 오랜 가뭄에 시달리다가 장맛비라도 듬뿍 내려주길 바라던 농민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한 하늘의 아쉬움인 듯하다. 오늘은 필자의 유년 시절에 뇌리에 저장된 풍경화 두어 폭 소환하여 글을 시작하려 한다.

장마가 막 끝난 이맘때쯤의 내 유년 시절 농촌 모습은 보리타작으로 분주한 시기였다. 보리를 베고 나면 뒤따라 장마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수확한 보리를 쌓아 뒀다가 장마가 끝난 후 탈곡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더군다나 보리 수확이 끝난 밭에는 콩이나 조를 심어야 하는데 장마가 시작되면 콩 갈이를 할 수 없으니 보리타작을 뒤로 미루는 것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마 중에 큰 태풍이라도 오게 되면 갈무리해둔 보리 더미가 바람에 날리고 비를 맞아 시퍼렇게 싹이 올라 못쓰게 되는 일도 가끔 있었는데 아직도 썩어가는 보릿대에 하얗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던, 풋풋하면서도 비릿한 보리싹 냄새가 코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보리타작이 끝난 한여름의 시골 마당엔 흔히 멍석이 깔려 있었다. 멍석엔 황금빛 겉보리가 칠팔월의 뙤약볕에 마르고 있었고, 그 덕분에 집마다 몇 마리씩 보신용으로 기르던 닭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 날 며칠을 닭장 안에 갇혀서 지내야 했다. 어쩌다 닭장을 탈출한 닭이 이웃집 마당에 널어 둔 곡식을 쪼아 먹는 비상사태가 종종 생기곤 했는데 때문에 멍석 위에는 늘 긴 대나무 장대가 할머니 방문까지 걸쳐져 있었다. 도톰하게 널린 겉보리에 늘 할머니의 발등 폭만큼 일정한 간격으로 골이 나 있었고, 그것은 간간이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셔서 보리가 골고루 마르라고 발로 저어주신 흔적이었다.

우리 집 가는 길은 구부정하게 휘어져 있었고 양쪽으로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 울타리에 호박 넝쿨 하며 박넝쿨이 경쟁하듯 엉켜서 자라고 호박꽃 박꽃이 만발했었다. 대문가 울타리에서 지천으로 피던 그때 그 호박꽃이 순도 높은 황금빛이었다는 사실과 황금빛 호박꽃과 하얀 박꽃이 흡사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다. 호박꽃은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벌 나비가 찾지 않는 저녁 무렵이면 잠들듯 꽃잎을 오므리는 특징이 있다. 화창한 햇살이 호박꽃에 비치면 꿀벌이며 호박벌이 뒷다리에 노란 화분을 잔뜩 묻히고 잉잉거리며 꽃잎에 드나드는데 벌들은 하나같이 꽃잎에 날아들 때는 소리 없이 들었다가 꽃잎을 떠날 때는 ‘앵’하며 큰 소리를 내고 날아갔었다.

반대로 박꽃은 해가 질 무렵에서야 오므렸던 꽃잎을 활짝 피운다. 호박꽃은 동틀 무렵에 오므렸던 꽃잎을 활짝 피우고 박꽃은 달이 뜨는 저녁 무렵에야 꽃잎을 활짝 피우니, 호박꽃과 박꽃이 서로 음양 관계의 같은 선상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것 또한 최근의 일이다.

자연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호박은 태양처럼 붉으면서 둥글게 생겼고 박은 달처럼 희면서 둥글게 생겼으니, 세상에 피는 꽃 중에 이처럼 음양의 위치를 정확히 밝혀 인간 앞에 나서는 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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