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 연재소설 ‘Grasp reflex’

/삽화 이건욱

허 형사에게 문자를 보내고 난 후 우현은 핸드폰을 차의 대쉬보드 위로 던졌다. 핸드폰은 앞 유리까지 미끄러졌다. 운전을 하고 있던 직원이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려 우현의 얼굴을 보았다.

-운전이나 해.

우현은 앞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있었다. 비가 내렸다. 좌우로 움직이는 와이퍼 사이로 이정표가 보였다.

-여기서 제일 조심해야 해. 올 때마다 헷갈린단 말이야. 한두 번 와 본 길이 아닌데 말이지. 오른쪽 왼쪽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180도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고. 알지? 우리는 직진이야, 직진. 그 길밖엔 없어. 언제더라? 지난번에 길을 잘못 들어서 고생했어. 바이어는 다시 돌아가 버렸고. 안 좋은 일이 생긴 줄 알고 말이야. 그때 손해가 좀 컸어.

우현의 말을 들으며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하면 뒷좌석에 있는 캐리어만 전해주고 와. 누군지 알지? 전에 봤잖아. 나는 오늘 내리지 않을 테니까. 혼자서 해보라고.

-직접 주시지 않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 손에 맡기신 적 없으셨는데요.

힐끗 우현을 돌아본 직원이 말했다.

-그냥. 오늘은 왠지 걔들 얼굴 보면 짜증이 날 것 같아서 그래. 말만 들어도 토할 것 같아. 가져다주기만 하면 돼. 돈은 이미 받았으니까. 깨끗이 씻었으니까 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우리말로 해도 알아들을 거야. 노래나 한번 틀어봐. 좀 신나는 걸로.

직원이 틀어준 빠른 박자의 노래들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첫 곡으로 돌아왔을 때 차가 멈췄다. 직원은 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가지고 갔다. 우현은 의자를 뒤로 젖혔다. 시발. 쓸데없이 전화질이야. 혼잣말을 내뱉었다. 하필 허 형사야. 알아들었겠지? 문자를 괜히 보냈나? 보내지 말걸. 취소할 수도 없고. 우현은 혼잣말을 주고받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낮은 잿빛 구름 아래로 검고 넓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동안 내릴 비였다.

그 녀석 때문이야. 녀석이 보자고 했을 때 무슨 일인지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그날 가지 말았어야 했어. 젠장.

그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낮은 기온은 아니었지만 바람 때문에 제법 쌀쌀했다. 우현은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어묵 한 그릇을 시켰다. 어묵이랑 건더기는 그대로 둔 채 국물만 홀짝거렸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 와 간다. 십 분 정도 후에 도착할 거야. 화장실 앞쪽으로 나와 있어. 머뭇거릴 시간 없으니까 검정색 SUV가 서거든 바로 타. 알아볼 수 있게 왼쪽 창에 노란색 스티커를 붙여 놓았어.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녀석이 전화를 끊었다. 이런 녀석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우현은 괜히 나왔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왼쪽 창에 노란색 스티커를 붙인 SUV가 우현의 앞에 섰다. 우현이 앞 좌석의 문을 열었다. 담배 냄새가 확 하고 몰려나왔다. 차에 올라타려 하자 녀석이 ‘뒷자리’하고 말했다. 우현은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다시 짧게 말했다. 빨리.

-너 다시 담배 피우냐?

뒷자리에 올라타며 우현이 물었다.

-오늘만 피우기로 했다.

녀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녀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뒷자리에는 노인 한 명이 타고 있었고 자는 듯 보였다.

-뭔데?

우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물이지. 부탁이기도 하고.

녀석이 가속 페달을 밟으며 대답했다.

-무슨 말이야?

우현은 노인과 녀석을 번갈아 보았고 녀석은 앞자리에서 작은 가방을 들어 우현에게 건냈다.

-일단, 가방에서 5cc짜리 주사기 꺼내서 한 대만 놓아줘. 다 재 놓았어. 거기 보면 주사액이 채워진 주사기가 있을 거야. 중간중간 봐가면서 계속 줘. 도착하려면 제법 더 가야 하니까. 너 주사 놓을 줄 알잖아.

-무슨 일인지 말해줘야 놓지.

우현이 다시 녀석에게 물었다.

-일단 한 번만 먼저 놓아줘. 아, 그놈. 참, 말 많네. 너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았냐?

녀석이 우현을 다그쳤다. 우현은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어 노인의 어깨에 주사를 놓았다.

-뭐냐 하면.

녀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다 생각해. 죽여야 하는데 그냥 죽이기에는 아깝더라고. 인공 장기가 몸 안에 몇 개 들어 있거든. 그래서 널 불렀지.

-무슨 말이냐?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떼어내란 말이야. 나더러?

우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녀석이 대답했다.

-네가 장기를 떼어내기 전에 죽은 사람이 될 거야. 그것까지는 너에게 시키지 않을게. 걱정하지 말고. 그런데 내가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 없거든. 네가 옆에서 방법을 가르쳐줘. 내가 할 테니까. 장기를 떼어내기 가장 좋은 방법으로 죽이면 되잖아. 그치?

우현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너 왜 이러냐? 나야 만나는 인간들이 원래 그런 놈들이니 놀랍지 않지만, 네가 이러는 건 좀 의왼데? 무슨 일이야? 원한이야? 아니면 뭔데?

백미러로 우현의 얼굴을 보며 녀석이 대답했다.

-너. 살 좀 찐 것 같다. 사업이 잘된다고 하더니만 진짜구나. 네 사업에 보탬이 되라고 내가 노력 좀 하는 거다. 거기 있는 것 안에 인공 장기 네 개가 들어 있다. 네 개나. 그러니 저게 인간이냐? 죽어야 할 때 죽지 않고 계속 사는 것. 인조인간이지, 인조인간. 그래서 내가 죽여주려고 하는 거다. 아마 죽고 나면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김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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