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팽나무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연합뉴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가 엄청나다. 예정된 수순으로 촬영지도 덩달아 인기다. 이럴 줄 알았다. ‘우영우 팽나무’가 있는 경남 창원 동부마을이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드라마 속 팽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도로 개발 계획에 의해 사라질 뻔한 마을을 구해낸다. 소박한 시골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 크고 울창하게 서 있는 500년 수령의 나무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우르르 몰려갈 일인가 싶다. 하루에 수백 명씩 찾아오는데, 농기계가 다니는 좁은 이면도로에 함부로 주차를 해놔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중이다. 주차뿐이겠나. 안 봐도 뻔하다. 쓰레기에 소음에 담배에…… 온갖 꼴불견일 거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는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서려 있는 독특한 기운.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성”인데, 미디어가 발달한 기술복제시대에는 실제 현장보다 영상이나 사진이 오히려 아우라를 갖는 반대 국면이 펼쳐진다. 영상기술로 표현해낸 드라마 속 팽나무의 아름다움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팽나무는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상상계의 기표가 된다. 드라마 속 ‘소덕동 팽나무’와 현실의 ‘동부마을 팽나무’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것이다.

대중에겐 받아들이는 문화만 있고, 창조하는 문화는 없다. 대중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때, 문화는 획일화된다. 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트로트 방송들이 대표적인 예다. 트로트가 싫은 게 아니라 여기도 저기도 온통 트로트판인 획일화가 짜증나서 티브이를 꺼 버린다. 남의 노래를 트로트 가수들이 뽕짝풍으로 부르는 것도 그만 듣고 싶다. 원곡은 영 들리지 않고, 조악하고 저급한 편곡만 판친다. 대중이 수동적이면 결국 개인의 독창성, 다양성, 개성 위에 집단적 유행이 군림하는 세상이 된다. 트렌드라는 것은 미디어의 생산자가 조작하기 쉽고, 그렇게 만들어진 유행은 사람들의 생각마저 조작한다.

대중은 정보를 원하면서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을 누리고 싶어 하면서 문화예술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다. 똑똑하고 싶지만 지식을 탐구하진 않는다. 누가 만들어 놓은 것, 설명해둔 것, 기성품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방송에 나온 제주도 돈까스집 앞에 텐트를 치고 밤새 기다리는 건 그래도 귀엽다. 규격화된 아파트, 무채색 세단, 연예인이 입은 옷, 성형수술, 남들 다 하는 거, 남들 보기 좋은 거, 남들이 부러워하는 거… SNS에는 비슷한 트렌드들이 전시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욕망한다. SNS를 도배하는 명품 가방, 브랜드 아파트, 비싼 골프채, 풀빌라에서 즐기는 호화로운 휴가, 주식 수익, 인맥 따위는 사회로부터 학습된, 타자화된 욕망들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의학 유튜브 채널이 권하는 식단으로 아침을 먹고, 국민 헬스 트레이너를 따라 운동하고, 점심엔 백종원 식당에서 밥 먹고, 오후엔 오은영 상담 방송을 보며 고개 끄덕이고, 저녁엔 인스타 맛집을 찾아다닌다. 인기 드라마를 보고, 채널을 돌리다 마감 임박 홈쇼핑 상품을 주문한다. 잠들기 전엔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해 김창옥이나 최진기의 강연 방송을 보거나 정치 팟캐스트를 듣는다. 그럴 수 있다. 다만 이게 요즘 우리 사회의 표준 인간이라는 게 문제다.

하루 동안 ‘생각’이라는 걸 스스로 하는 순간이 있긴 할까? 대중은 타인의 생각을 생각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건 파스칼 시절 얘기다.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오직 갈대가 되어야만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은 갈대가 되길 원치 않는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건 여간 괴롭고 불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스노비즘은 결국 주체에게서 개성과 취향, 주체성을 앗아간다. 욕망이 비슷해지면 생각도 서로 닮는다. 물신주의가 강한 지배력을 가진 사회일수록 대중들은 스스로 사유하는 대신 자본화된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미디어나 정치 선전에 쉽게 현혹된다. 획일화는 정신의 마비 상태다. ‘트렌드’라는 달콤한 이름 안에는 마약 성분이 있다. 인생을 흔히 여행에 비유한다. 스스로 지도를 펼쳐 걸어 나가는 여행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생 전체를 단체 패키지 관광으로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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