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물난리가 났다. 여름 가뭄을 탓하며 기다리던 비였는데, 하루저녁 쏟아부은 물 폭탄은 문명이 쌓아 올린 도시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인간의 똑똑함이 자연의 손아귀에 다시 한번 장난감이 되어버렸다.

신참 교수로 부임했던 미국대학에서 열정과 기량을 펼치며 열심히 일하리라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른 나라 출신 교수가 끼어들어 무엇 하나 할 일이 없어 보였다. 한 선배 교수와 마주 앉아 낙담한 내용을 고백했더니 돌아온 충고는 나름 충격이었다. ‘그래도 더 좋게 바꿀 일이 분명히 있을 게야(You can always make it better)’ 할 일은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면 생각하면 없다.

위기를 지나며 생각을 한다. 인간은 보기보다 게을러서 어려움을 꼭 겪어야만 무엇이라도 집중해서 궁리하고 의미있게 바꾸곤 한다. 치수관리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했고, 더욱 많은 예산을 들여 대비했어야 하는 등 허점들이 이제는 보인다. 전문가들의 지적질에 이제 귀가 열리고 보통 사람들의 질곡이 드디어 조금씩 보인다. 자연이 안겨주는 어려움이긴 해도 사람이 준비하는 데에 따라 얼마든지 고난의 강도와 밀도를 조절할 수 있다. 어려움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려워도, 경험과 과학의 지혜를 모아 준비하고 훈련하여 다가올 고통을 최소한으로 제어해야 한다. 정작 위기에 봉착하여 피해와 복구에 임하려면 일의 순서와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아 실패와 패착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여 평화로울 때 오히려 위기를 걱정하며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2017년 가을, 평온했던 포항에서 지진을 만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지진의 충격 앞에 교수와 학생들은 미리 알고나 있었던 듯 모두 건물을 신속히 벗어나 중앙운동장으로 모여들었고 흥분과 불안 가운데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자칫 공포와 전율로 아수라장이었을 지진의 충격을 무사히 겪어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였을 평소에 위기를 생각하며 준비한 덕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휴가와 여행의 즐거움으로 들뜬 승객들에게 비행기 탑승 후 첫 경험은 객실승무원의 ‘위기대피요령안내’가 아닌가. 완벽해야 할 그 순간에 왠지 어색한 상상마저 하게 하지만, 아무도 승무원을 탓하지 않는다. 위기는 평소에 지켜야 한다. 위기를 닥치면, 언제나 늦다.

위기가 가져올 위험을 잘 견뎌야 하지만, 위기를 지나면서 건져 올릴 기회는 혹 없을까. 그렇게 많은 물 때문에 모두 힘들었지만, 그 물을 붙들어 활용할 방법은 혹 없었을까. 별일 없어 보이는 완벽한 평소에 위기를 상상하고 해결책을 구상하며 남다른 실력도 길러야 한다.

위기를 상상하는 준비태세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군인과 공무원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완벽한 평소에 극심한 위기를 상상하며 준비하는 태도를 지닐 때, 사회와 공동체는 상생과 협력, 공감과 배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지 않을까. 다가올 어려움의 언덕을 함께 넘을 용기와 기백으로 나라는 든든해지지 않을까. 완벽한 평소에 위기를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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