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순수필가
양태순
수필가

여름을 이고 가는 여행이다. 집을 떠나면서 잡다한 생각을 구겨 넣고 문을 잠갔다. 따라오지 못하게 빗장까지 질렀다. 태양이 조각조각 쏟아져 대지를 굽는 열기에 코끝이 후끈해도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기분 탓일 거다. 잠시 일상으로부터 비켜서는 홀가분함에 마음이 부푼다.

목적지는 신안 퍼플섬이다. 가고 오는 길이 멀지만 더 늦기 전에 다녀오자는 말에 친구들이 기껍게 찬성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수다가 폭발했다. 학교 때의 친구라 서로의 친구가 겹치기도 해 이야기의 소재는 풍성했다. 때로는 서로의 수다가 허공에서 얽혀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샘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를 넘나드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흥미진진했다. 간간이 튀어나오는 고향 사투리가 이야기를 더 찰지게 녹여냈다. 이야기의 대상이 들으면 언짢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사는 것이 이 맛이라는 듯 웃으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 천사대교에 이르렀다.

천사대교는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신안군이 천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다.

입구에서 본 다리는 장관이었다. 다리의 주탑에 연결된 케이블은 은실로 짠 주렴처럼 아른거리고 바다와 하늘 사이로 천천히 달리는 차가 천사 날개를 지날 때는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듯했다. 파란 물을 잔뜩 머금은 하늘을 콕 찔러보고 싶은 아찔한 설렘이었다.

몇 개의 짧은 다리를 더 지나 퍼플섬에 도착했다. 안좌도, 만월도, 박지도로 연결된 다리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보라색 일색인 집과 건물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신비스러웠다.

보이는 곳마다 포토존이어서 그곳에서 만난 여행팀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추억을 쌓았다. 전동차를 타고 반월도를 둘러보는 내내 길가에는 버들 마편초가 한들거리며 반겨주었다. 원래는 자생하는 도라지꽃이 많아서 퍼플이었지만 지금은 오래 볼 수 있는 버들 마편초로 바꾸었다고 한다.

비탈진 밭에는 고구마와 참깨가 많았다. 참깨를 보며 꺼낸 친구 이야기가 대박 사건이었다.

들어보니 참깨를 받은 사돈이 전화를 해서 ‘사돈, 방앗간에서 중국산이 섞였다는데 아니지요?’ 했더니 ‘사돈이라서 중국산을 쪼매만 섞었니더’ 했단다. 솔직한 사돈 때문에 우리는 기막혀하면서도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퍼플교를 걷는 내내 포즈 잡으며 시시한 이야기로 깔깔거렸다. 그러는 동안 서로를 향한 다리는 더 단단해졌다.

다리는 사이를 이어준다. 뭍과 섬, 섬과 섬, 길과 길,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게 한다. 이미 열린 길을 거리는 더 가깝게 마음은 더 두텁게 해주는 역할이다. 다리가 오래도록 튼튼하려면 오가는 이의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이번 여행은 새 다리를 놓기도 했다. 내 마음에서 신안으로 퍼플섬으로 다리를 놓았다. 많은 다리를 지나며 쌓은 이야기들이 기억 저장고에서 반짝이고 있을 게다. 언제든 꺼내면 2022년 여름과 함께 아련한 시간으로 피어날 것이다. 방송에서 또는 다른 사람의 여행 경험담에서 희미해진 다리가 다시 진해지기도 할 테지만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는 자칫 끊어지기 쉽다. 사소한 실수가 쌓이거나 친하다고 번번이 예의를 무시하면 그 틈으로 의심의 물이 스며든다. 추억으로 이어진 줄에 어느덧 구린내가 날 때면 위험한 순간이다. 재빨리 귀를 세우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자만에 빠져 눈치코치 모른다면 자기도 모르는 새 다리는 없어지고 만다.

아름다운 다리를 건넌 친구들과의 다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를 덧대고 삐걱대지 않도록 속마음 헤아리기와 배려란 기름칠을 꼼꼼하게 했다. 같이한 세월만큼 우정도 추억도 돈독해지는 너와 나, 우리의 다리가 오래 이어질 것을 믿는다.

친구들, 참깨에 중국산 참깨는 섞으면 안 된다. 그것만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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