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휴식의 균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스플래쉬

여러 군데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니다 보면 공통적으로 받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야근에 관련된 질문이다. 야근이 종종 있을 텐데 해낼 수 있는지, 본인 업무 말고 추가 업무가 주어진다면 잘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사실 나는 이전에 이런 질문에 “저는 퇴근 이후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일과 쉼이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할 때에 일을 더 열심히 잘 하는 것 같다”라는 답변을 한 이력이 있다. 당연히 면접관의 마음에 들었을 리 없다. 분명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면접관의 인상이 급격히 찌푸려지고 있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최근 미국 청년 세대에선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신조어로 떠오르고 있다. ‘조용한 사직’은 실제로 직장을 그만 두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 범위 외에 희생은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회사에선 나에게 주어진 일만 행하고 퇴근 후엔 회사 바깥에서의 삶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를 뜻한다.

‘조용한 사직’의 시작은 미국 20대 엔지니어 자이들플린의 틱톡 계정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17초 분량의 영상에선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겠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자이들플린은 ‘조용한 사직’이란 업무 시간 내 최선을 다해 일을 한 다음, 근무 시간 이외에는 일과 다른 본인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며 강조한다. 위 동영상은 340만회라는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하였고, 각종 SNS에선 #조용한 사직이 달린 헤시태그 게시글이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청년 세대 사이에서 ‘조용한 사직’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생겨났다. 아리아나 허핑턴 스라이브글로벌 CEO는 자신의 SNS에 “조용한 사직은 단지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만두는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고, 캐나다 억만장자라 알려진 케빈 오리어리는 “원하면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성공하는 방법”이라며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를 비판한 바 있다.

돌이켜 나는 왜 전 직장을 그만두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사직이유서엔 건강상의 이유라고 모호하게 써내려갔지만, 사실 목적 없이 습관처럼 행해지는 야근 때문이었다. 나는 1년도 안 된 신입이었고 내가 맡은 업무는 강도가 세지 않은 단순 업무에 불과했다. 굳이 야근을 해야만 끝낼 수 있는 업무가 전혀 아니었지만, 그 시간까지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으면 인정받는 분위기가 존재했고 이윽고 야근이 정말 당연시하게 되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사의 피드백을 기다리기 위해 2시간 내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고, 늦은 시간 귀가길 마저 업무 연락에 답하기 위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휴대폰 진동이 끊이질 않으니 잠은 또 얼마나 설쳤는지. 이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라던가, 일의 노하우를 배운다거나, 성취감이 따랐다면 그리 쉽게 퇴사를 외치진 않았을 것이다.

‘조용한 사직’을 두고 세대 간 주장이 엇갈리지만, 사실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는 것은 그저 개인의 취향에 가깝다. 세대를 떠나 일과 승진, 급여를 중요시하게 생각한다면 본인의 개인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회사에 희생하며 기꺼이 일을 배울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해내며 에너지를 조절하고, 회사 이후의 삶에 힘을 쏟고 취미를 즐기고 자기계발에 몰두할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고 선택의 문제이지 굳이 한 세대를 꼬집어 무날카롭게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실 야근이 당연시하게 행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조용한 사직’을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에게 주어진 업무는 1인분이 아닌 2-3인분의 일이라 내게 주어진 것만 해도 야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난 야근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그저 나의 업무 범위 이상으로 일할 때 승진이나 급여 보상 등의 혜택이 따라왔으면 한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과 통제권 그리고 적절한 보상과 체계라는 경험이 따라온다면 그 누구도 발 벗고 나서서 회사에 ‘희생’하지 않을까. ‘조용한 사직’을 생각하다보면 조금 씁쓸해진다.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