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내가 사는 혁신도시는 전형적인 계획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 지역이 아파트 단지별로 구획되고 단지와 맞닿는 상가에는 마트와 음식점, 병원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차로 10분만 나가면 거짓말처럼 넓은 들판과 산이 펼쳐진다. 젊은 사람들은 혁신도시에서 살려고 하지만 혁신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2년 만에 100%가 급등해버려서 이제는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분할된 공간은 도시의 경제 양극화를 의미한다. 혁신도시에는 (수도권에 비하면 한참 저렴한 가격이지만) 호가 10억이 넘는 아파트에 살며 외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구도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규모의 아파트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의 비어 있는 공간에 아파트를 올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고, 그 아파트가 완공되면 경제 양극화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

올해 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다. 근처의 어느 공원을 가도 잠자리 떼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아이들도 잠자리 잡기가 어렵지 않은 환경이다. 매달 보름달을 마치 망원경으로 당겨온 듯한 크기로 관찰하는 즐거움도 여전하다. 내년에는 시에서 텃밭 분양을 받을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아이들을 언제 서울로 유학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지방의 30만 도시에서 아이 키우기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자 엄마와 함께 수도권으로 올라가서 주말 부부가 된 동료 교수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나 같은 수도권 출신들에게는 공간의 분할만이 아니라 마음의 분할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에서 ‘기후정의 행진’이 있었다. 주최 측 추산 3만5천명이 운집한 집회에는 청년, 노동, 장애, 농민 등의 단체가 동참했다. 한때 ‘자연보호’라는 추상적 명제로 기후위기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착취의 문제로 우리의 삶에 깃들어 있다.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던 것처럼 기후위기는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을 먼저 공격한다.

기후위기가 일국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기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불과 1년 전 대홍수로 큰 위기를 겪었던 유럽은 올해에는 전례 없는 폭염을 견뎌야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에서는 40일간 비가 멈추지 않고 내려서 국토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고 1천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기후위기는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을 펼쳐 온 국가 권력과 나의 신체와 욕망을 물질을 좇는 것으로 귀속시킨 주체에 대한 경고이다. 기후위기는 효율성과 편리성, 그리고 자산 증식만을 추구했던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포괄하는 삶의 습성을 인식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것이 당장 필요하다. 지방에서 산다는 것은, 자기 분열의 메커니즘을 뚜렷이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 분열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 기후위기가 삶에 파고든 시점에서 실체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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