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오랫동안 테니스와 골프를 즐겨왔다. 둘 다 나이가 들어도 즐길 수 있는 개인 운동으로 즐겁고 건강에도 좋은 운동들이다.

그런데 “테니스와 골프 중 어느 운동이 더 즐거운가”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테니스”라고 대답한다.

필자가 왜 테니스를 더 좋아하고 즐길까 하는 이유가 좀 색다르다. 운동량이 더 많아서 라든가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이 보통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좋아하는 대표적인 이유이다.

테니스가 2시간 정도의 운동량으로 4시간의 골프운동량을 넘어서고 잠시 시간을 내서 칠 수 있지만 골프는 하루 종일 시간을 내야 하고 비용도 한국에서는 테니스보다 엄청 비싸기에 그런 이유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대표적 이유가 된다.

그런데 필자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이유는 위에 열거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주 색다른 이유가 있다.

스코어를 세는 방식이 공정하기에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이다. 테니스는 상대의 공을 받아치면서 스코어가 카운트 되기에 속일 수도 없고 봐줄 수도 없는 경기이다. 물론 약한 상대를 위해 살살 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체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스코어도 정확히 카운트 된다.

그런데 한국의 동호인 골프는 시작부터 룰이 파격적이다. 첫 홀이나 마지막 홀은 모두 파(par)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더블보기(double bogey) 이상은 카운트 안한다든가 하는 룰도 있다. 또 그린에서 OK라는 제도가 있는데 기준이 들쑥 날쑥이어서 한사람이 버디(birdie)를 하면 모두 OK라고 하면서 퍼팅을 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을 만지고 라이(lie)를 개선한다든가 오비, 해저드 티(OB, Hazard tee) 가 별도로 플레이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

캐디에게 들은 이야기는 일본이나 미국사람들이 골프를 치면 스코어를 공정하고 정확히 카운트 한다고 한다. 스코어를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공정한 카운트를 통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한국 골퍼들에게 인기를 끄는, 줄로 연결된 티(tee)가 왜 미국에는 없는지 한동안 의아했었다. 그런데 줄티는 타구 방향을 가르치기 때문에 룰에 어긋나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룰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불공정한 스코어링으로 진행되는 골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왜 미국은 과학, 의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을 300여 명도 넘게 받고 우리 한국은 한 명도 없는가? 그건 적당주의를 거부하고 룰을 지키는 그들의 몸에 밴 문화 때문이 아닐까?

‘MIT, 스탠퍼드 같은 미국 명문대의 조교수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말은 그들이 테뉴어라고 일컫는 종신직을 얻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반면, 한국 대학 교수들의 테뉴어 심사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명목뿐인 경우가 많다. 한국대학에서 테뉴어를 못 받아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교수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의 ‘적당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학계뿐만 아니라,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부터 시작해서 오래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태풍 매미 참사 같은 대형 사고는 물론, 정교한 정책질문이 아닌 호통으로 일관하는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학계, 사회, 정치 모든 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유학 중 맹장이 터져 수술을 해야 하는 아들이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수술을 즉시 하지 않고, 항생제 투여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는 의사를 보면서 답답해하던 기억이 있다. 수술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미국 의술의 현장 집행 방법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던 적이 있다.

한국의 친구 의사는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골프도 잘하고 그리고 병원에서 수술도 잘하는 거야. 자네 아들 맹장염 수술도 역시 한국이 최고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필자에게 한 가지 진한 의문이 다가왔다. “골프도 잘하고 수술도 잘하는 손재주 좋고 머리 좋고 재능 있는 한국 사람들이 왜 노벨상은 단 한 개도 타지 못할까?”

엉뚱하게도 필자는 골프에서 원칙을 지키는 스코어링과 맹장염 수술을 미루면서 원칙에 충실하려는 미국의학이 답답하긴 해도 노벨상 수백개를 타낸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저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수천가지 약품은 한국인이 만든 건 없다고 한다. 서양인들이 만든 약품과 CT, MRI 등 기술과 로봇 수술 등 대부분 서양에서 만들어 졌다. 손재주는 좋다고 하지만 그들이 만든 수술방식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할까?

“빨리빨리” 와 적당주의가 빨라보여도 결국 깊이를 더하지 못하는 근본적 문제를 가져와 각종사고는 물론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얕은 학문을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 그건 동호인 골프에서부터 적당주의 카운트 방식을 몰아내는 것이 첫 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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