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대수필가
윤영대
수필가

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秋分)이다. 한여름의 더위가 사라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의 변화에 벌레가 땅속으로 숨고 누른 벼 이삭은 풍요로운 결실을 위한 기도를 하듯 고개를 숙인다. 텃밭에는 빨간 고추가 익고 마을 골목에는 홍시가 탐스럽고 과수원에는 사과가 알알이 태양을 닮아 붉게 익어가고 있다.

20여 년 만에 밀어닥친 최강 태풍 힌남노가 폭우와 강풍으로 주택 8천 가구와 상가 3천 동을 물바다로 만들어 2천여 수재민을 내며 초토화했던 상처의 기억 속에 포항도 이제 한숨을 돌리고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러한 특별재난지역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주민들에게 국가의 발 빠른 지원과 함께 국민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음이 감사하다. 오천 냉천의 범람으로 인한 안타까운 인명손실과 시내 저지대 상가의 침수로 추석특수를 잃어버린 상인들의 슬픔도 씻어줄 응원도 절실하다. 흙탕물에 잠겼던 포스코와 제철산업 단지는 숨이 멎은 듯 그 피해가 엄청나게 커서 복구에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최선의 노력으로 빠른 기간 내에 생산을 회복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이제 온 시내에 폭우를 퍼붓고 흙탕물로 뒤덮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노래하기에 깨끗하게 치워진 바닷가를 거닐어 본다. 김경숙 작가의 ‘2022 영일대 샌드페스티벌’의 모래 작품들이 자유롭다. 소라와 화환을 들고 웃는 ‘바다를 품은 인어’상 뒤로 ‘푸른 꿈의 말’ 4마리가 달리고 사자와 사슴과 백로가 어울려 태풍의 기억을 씻고 있다. 또 강아지를 안고 있는 소녀와 비치볼을 던지려는 아가씨,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가을의 평화를 가슴에 품어본다.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서 환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의 모습 또한 정겹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 전국 곳곳에서 인삼, 고추, 오미자, 포도 등 특산물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포항의 ‘국제불빛 축제’는 잠정연기되었고 태풍으로 피해를 본 모든 분들의 빠른 일상회복을 기원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호박이랑 박이랑 따서 얇게 썰어 말리고 깻잎도 따서 절이며 귀뚜라미의 맑은소리 들으며 가을을 즐겨야겠지. 누른 벼 베어 햅쌀밥 해 먹으며 음력 8월의 농가월령가도 부르며 폭우 피해를 입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어 보자.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아직도 기죽지 않은 코로나에도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 들판에는 코스모스가 가을을 노래하고 하얀 개망초가 웃고 있는 계절에 우리 국민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야 할 텐데, 정치계는 아직도 마음의 쓰레기를 치우지 못하고 서로의 탓만 하고 있다. K<2014>pop 등 우리의 문화예술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오늘날, 과학, 무기 등 ‘한국의 힘’을 보란 듯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이제 가을걷이를 해야 할 때, 뜨거운 여름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잘 가꾸어온 결실을 추수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계절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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